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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영적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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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받는 데 있습니다(벧전 1장 9절).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하늘 죄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땅까지 오셔서 구원의 진리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원받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이요 가장 큰 소득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시온의 가족들은 분별력을 갖고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영적인 손해만큼은 보지 않고 영적 축복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으려면 자기 모든 소유를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야 하듯, 천국이라는 보화를 얻기 위해서라면 젊음과 노력, 그 어떤 것이라도 투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손해 없이 천국이 얻어질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육적인 유익과 영적인 유익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영적인 것은 결코 손해 보지 말도록 합시다. 가까워진 천국을 생각하면서, 모두가 천국을 얻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살진 짐승 떼 대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울의 영적 손해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적 손해를 작게 여기고 육적 손해를 더 크게 여겨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던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영적 손해를 보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영적 축복을 쌓아가는 길인지 성경에서 지혜를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상 15장 1~23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에 대한 진노를 내리시면서 그 짐승들까지 다 진멸하라고 사울왕에게 명하셨으나 사울은 자기 생각을 앞세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볼품없고 비루먹은 짐승들만 멸하고 살진 소와 양들은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사람이 눈앞의 유익만 바라보다 보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영적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됩니다. 사울도 육적인 손해를 입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는 동안 영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세워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양이나 소 같은 제물보다 한 영혼, 한 영혼을 더 소중히 여기셨기에 생명의 길에서 멀어져가는 사울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셨던 것입니다.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사울이 입은 영적 손해는 참으로 컸습니다. 비록 양 떼와 소 떼는 많이 얻었어도 그로 인해 하나님을 잃었으니 실상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다음에는 영원한 지옥과 같은 시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후, 사울은 악신에게 사로잡혀 괴로움을 당하다가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요 15장 5절).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이 영적 손해로 직결되고 순종하는 것이 영적 축복을 쌓아가는 지름길입니다.

신 28장 1~6, 15~19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불순종하면 항상 저주가 따르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잘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앞세워 영적인 손해를 자초했던 사울의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육적인 이익을 추구하다 영적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고 영적 유익을 추구하면서 육적인 손실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어느 쪽이 올바른 선택이겠습니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의 영적 손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유익이며 축복을 쌓아가는 길인가를 깨닫고 말씀을 절대적으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받은 축복까지도 다 잃어버리고 나중에 가서야 뒤늦게 후회합니다.

창세기에는 영적 손해를 입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또 하나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창 25장 27~34절 “…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에서처럼, 세상에는 무엇이 영적 손해인지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단은 항상 작은 미끼를 주고 영적인 큰 것을 빼앗아갑니다. 에서도 팥죽 한 그릇은 얻었지만 영적으로 보면 잃은 것이 훨씬 더 컸습니다.

창 27장 30~37절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비에게로 가지고 가서 가로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것이 영적 손해의 표본이라 하겠습니다. 에서는 자기가 장자니까 아무렇게나 해도 장자의 축복은 마땅히 자신이 받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팔아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가운데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축복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야 그 가치를 깨닫고 방성대곡하며 조금이라도 축복을 달라고 아버지인 이삭에게 매달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에서도, 사울왕도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몰라서 엄청난 영적 손해를 보았습니다. 세상의 것은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영적인 손해는 절대 봐서는 안 됩니다. 영적 손해를 보는 자가 절대 되지 말라고 신약에서도 간곡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히 12장 14~17절 “…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어떤 손실을 치르고라도 천국은 얻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천국을 가벼이 여기다가 놓쳐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심판의 날에 가서 자비를 애걸해도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한번 팔아버린 장자의 명분은 두 번 다시 에서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순종하느냐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두렵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외면하고 사람의 계명을 고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가치 없이 여긴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려질 형벌이 얼마나 더 크고 중하겠나 생각해보십시오.

하늘 장자로서 축복을 받은 우리도 이런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시온에 거하는 하나님 백성이라 해서 말씀에 순종하든 말든 무조건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울도 왕이었으나 왕의 자리를 빼앗겼고 에서도 장자였으나 장자의 명분을 빼앗겼습니다. 다들 당연한 위치에서 당연한 축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영적 손해를 생각지 않고 살아온 결과입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니 환도뼈가 위골되더라도 하나님의 축복만큼은 끝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축복은 이처럼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위에 내려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손해는 가볍게 여기고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동안, 축복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노력해서 자꾸만 축복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간다 하셨습니다(창 32장 22~30절, 마 11장 12절 참고).


은 삼십에 그리스도를 팔아버린 가룟 유다의 영적 손해

이 귀한 장자의 축복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도록, 천국을 침노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음질해봅시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말씀 상고하고, 열심히 전도하는 데 마음과 뜻을 다 해야겠고,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 어머니의 가르침에 기쁘게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면 만사가 형통하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신약의 복음서에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영적 손해를 자초했던 또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 26장 14~16절 “그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열두 제자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예수님 몸값을 흥정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승이신 예수님을 대적에게 팔아 넘기고 그 대가로 은 삼십을 받기로 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을 은전 30냥에 팔아버리는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으니 그가 치러야 할 죄 값은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무겁겠습니까?

마 26장 47~52절 “말씀하실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

같은 제자라 해도 가룟 유다와 베드로, 이 두 제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차이가 있습니다.
유다는 물질에 욕심이 나서 예수님을 팔아넘겼으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편에 서서, 예수님을 잡으려는 대제사장의 종들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계속 영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고, 한 사람은 계속 축복을 쌓고 있습니다.

그 후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끌려가시는 모습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은을 대제사장들에게 돌려주었지만 상황을 되돌리지 못하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마 27장 1~8절, 행 1장 16~19절).

이런 내용을 바라보며 우리는 영적 손해가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깨닫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늘에서 범죄하고 이 땅에 쫓겨 내려온 우리에게 회개의 시간으로 주어진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다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한 시간으로 주어진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영적 축복을 끝까지 굳게 잡는 믿음

이솝 우화 중에 까마귀와 여우 이야기가 있습니다. 까마귀가 고깃덩이를 물고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여우가 어떻게 하면 고기를 빼앗아 먹을까 하고 꾀를 냈습니다.

“까마귀님, 까마귀님, 어쩌면 그리 아름다우십니까? 당신의 아름다운 음성을 한 번만 들어보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밑에서 들려오는 온갖 감언이설에 한껏 우쭐해진 까마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까악, 까악” 하고 울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먹이는 아래로 떨어져 여우의 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단이 바로 이런 것을 노립니다. 뭔가를 주는 것 같지만 우리가 그것을 잡으려는 순간 우리가 가진 것을 다 빼앗아가는 것이 사단의 수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면류관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세속의 것을 붙잡으려고 이 면류관을 내려놓으면 사단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빼앗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딤후 4장 10~11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가운데 세상을 사랑하여 진리를 떠나버린 데마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처럼, 에서처럼, 사울왕처럼, 영적 손해를 보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금 얼마나 통곡하겠습니까?

그동안 영적 손해 나는 일을 했는가, 아니면 축복받는 일을 많이 했는가, 장자의 명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가, 오히려 이 세상의 것을 더 추구하지는 않았는가 한번 되돌아보십시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어떤 일이 있어도 영적으로 판단하고 영적으로 손해 보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하게 협박했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보라고 했습니다(행 4장 17~20절). 영적 손해와 영적 유익을 분별하여 하나님 말씀을 절대 저버리지 않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도 그 길을 통해서 뭔가 큰 유익이 기다리고 있는 양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고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음성만을 듣고 따라갈 때 영원한 천국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천국 유업을 얻는 장자의 명분을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야곱처럼 환도뼈가 부러지더라도 축복만은 허락해달라고 매달릴 수 있는, 영적 손해를 보지 않는 하늘 자녀들이 되셔서 말씀대로 사는 가운데 모두가 천국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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