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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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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오늘날 그리스도를 전하는 우리는 초대교회 당시와 같은 상황에 종종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내용에 대해 초대교회 복음 선지자들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복음을 전파하였고 또 그 일을 반대했던 당대 종교 지도자들은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훼방하였는지 살펴봅시다.

천국에 갈 사람들과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들에 대해 살펴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참으로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는 은혜로운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딤전 2장 4∼5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님이 사람이라는 부분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면 될 것을 앞에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그 당시의 종교인들은 그리스도 곧 성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는 육체가 아닌 영으로 활동하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 인생과 같은 모습을 갖출 만한 능력도 없는 분으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낳았으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믿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많은 핍박을 가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신앙관을 가졌던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영마다 전부 적그리스도의 영이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마귀의 영을 받은 자들이라고 강하게 증거했습니다.

요일 4장 2∼3절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등장하실 때 육체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당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출현할 때에 절대 육으로는 올 수 없다 하며 오히려 비방하고 비난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상황을 좀 더 연구해 보면서 사도들이 왜 이러한 말씀을 기록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 1장 1∼14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태초에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때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일을 전파하시며 속죄함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진리를 증거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빌 2장 5∼6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사도 중의 사도라 인정받는 바울이 믿고 바라본 예수님은 하나님 바로 그분이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하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었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도 예수님을 태초의 말씀이신 하나님이라고 강력하게 증거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요한은 영적인 안목으로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사도들로서, 모범적인 신앙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대에는 존경받지 못한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증거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닌 나사렛 목수로서 바라보았던 시절, 그들은 그 시대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믿음을 보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골 1장 15∼16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느냐고 조롱하던 그 시절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당당히 증거하며 올바르게 믿고 따랐습니다.

어느 시대나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훼손시키고 훼방하는 무리도 있게 마련입니다. 훼방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적인 내용에서 많은 방해와 핍박을 가하고 있을 때에도 사도 바울, 사도 요한 등 모든 복음의 선진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한결같은 믿음으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깨닫지 못했던 사도시대의 현실

그 시대 교권을 잡고 있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모든 기득권 층에 있었던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외면하며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사도들은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 또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다", "세세에 찬양 받으실 하나님이시다"라고 표현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었습니다.

그 당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2천 년 전,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은 모습으로 사람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을 갖추지 못하셨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고 다니셨던 그 복음이 당시의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교권을 잡고 있었던 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의 눈에는 사이비 복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제사 의식에 빼놓지 아니하고 등장하였던 가장 중요한 제물이 짐승이었습니다. 짐승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 짐승을 제물로 삼아서 짐승의 피를 흘려 하나님께 예배를 올리던 터에 "이제는 내가 왔으니 짐승의 피가 필요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기들이 대대로 행해왔던 제사 의식과는 너무 차이가 컸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몰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게 되었고 감히 하나님을 여러 가지 악한 말로 저주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요 10장 30∼33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이유로 당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핍박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사도 요한도 예수님이 태초에 계셨던 "말씀 하나님" 바로 그분이심을 증거한 것처럼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알아보고 영접했으나 당대 교권을 장악했던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웅장하고 화려한 영광의 광채 속에 오셔야 한다고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시며 자신들의 악한 소행들에 대해서 회개를 촉구하시고 경고를 내리시니 분을 품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라고 보았을 때 저들은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만 보고 대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다는 문제가 기존의 종교인들에게 반감을 사며 배척당할 것이 이미 초대교회 역사 속에서 예언적으로 분명하게 증거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2천 년 전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증거하시고 그 이름을 믿으라 가르치셨을 때 어떠한 오명을 씌웠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사렛 이단"

행 24장 1∼16절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종교 지도자들은 고소할 사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기들과 교리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바울을 고소하였습니다. 바울은 범법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종교적인 입장에서 고소를 당하였습니다.

당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예루살렘에 가득 퍼졌고 그 주변에까지 널리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을 가리켜 나사렛 이단이라는 오명까지 씌웠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을 총독의 법정에 세웠습니다. 한 무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고,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종교 단체에서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이냐고 주장하니, 자연히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대립을 영적으로 본다면 하나님과 사단의 대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법정에 끌려갔지만 왜 법정에 끌려가야 했는지 죄목을 그들에게 대보라고 했을 때 그들은 바울의 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단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요 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나중에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다녔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예 변론하는 자리에서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道)를 좇아"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단의 도였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나사렛 이단이라고 했던 무리들을 어떠한 자들이라고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 23장 13∼15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추앙받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화(禍), 즉 저주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온갖 것으로 훼방하니 천국 문을 닫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이라 하느냐"며 배우지도 못했음을 탓하고, 늘 따라다니면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마음에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온갖 것으로 훼방하며 천국에 나아갈 기회를 없애고 박탈하는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일에 사람들을 앞세워 자신들보다도 더 행악을 저지르는 길로 유도하기 때문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들은 절대 천국으로 가지 못하니 결국 갈 곳은 영원한 지옥밖에 없습니다. 바울을 고소하는 법정에 참여했던 아나니아나 더둘로, 거짓 장로들,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유대인들 …, 그들은 지옥에서 고난을 당하며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신흥 종교

성경에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오신다고 기록되어 있고(히 9장 28절), 모든 예언을 통해 성경 66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미 교권을 장악한 종교 지도자들은 결단코 재림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초림 때나 재림 때의 상황을 미리 아시기에 너희가 천국 문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양상이 계속 진행되니 복음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기성 종교인들과 충돌이 벌어집니다.

행 5장 26∼28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라고 전파되었던 진리의 복음은 그 시대로 볼 때는 새롭게 등장한 신흥 종교이며 유대인들로선 처음 들어본 진리의 내용입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진리이기에 그들 사이에 크게 논란을 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하고 타락한 상태를 혐오하던 당시의 민중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적 기갈을 해결하는 단비요 생명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며 가는 곳곳마다 믿는 사람이 하루에 3천 명도 되고 5천 명도 되었습니다.

행 4장 2∼21절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 날은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주었으니…"

하루에 오천 명씩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니 종교 지도자들이 놀랄 일이 아니겠습니까? 타락해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든지 아니 믿든지는 둘째 문제였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위상과 권위가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잡아서 위협도 하고, 협박도 하고, 옥에 가두기도 하고, 채찍으로 때려 보기도 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그 수는 점점 더해만 갔습니다. 아무리 거짓으로 모함하며 나쁜 소문을 퍼뜨려도, 진리를 사모하고 천국을 소망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만있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은 점점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퍼지고 퍼졌습니다. 아무리 막고 막아도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일인지라 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전진하는 복음

느헤미야 성전 건축의 역사를 바라보더라도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앞장서서 훼방했습니다. 그 성은 여우만 올라가도 허물어지는 성이라며 비웃고 조롱하며 심적으로도 유다인들을 매우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유다 모든 방백과 앞선 지도자들이 전부 마음을 하나로 하여 밤에도 파수를 보면서, 일을 할 때도 한 손에는 창과 방패를 들고 또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한편으로는 적을 막아내며 한편으로는 성전 건축을 계속 진행해 나갔습니다(느 4장 1~23절).

드디어 성전이 완공되자 대적들은 그것을 보고 간담이 녹았습니다. 인간이 한다면 중간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하늘의 신이 저들과 함께 하는 것이 틀림없다며 놀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느 6장 15~16절).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불태웠던 사도들, 지금 그들은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에서 사람이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와 평강을 하나님께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고 담대하게 주장했던 사도 바울, 그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영화로운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지목하고 괴로움을 주었던 대제사장이나 당대 종교 지도자들은 지금 어디에 가 있겠습니까?


예언된 영적인 쟁투와 승리의 약속

오늘날 많은 사람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다면, 물욕적이고 현세주의적이고 성경대로 하지 않는 이 세대를 보고서 진리를 찾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렇지 못한 상태임을 이미 초대교회 역사를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영적 성전 재료들이 성령과 신부의 진리의 빛을 보고, 그 음성이 전해지는 곳마다 많은 식구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니, 예언을 따라 초대교회 당시 있었던 모든 불합리한 사건들이 전부 재현되고 있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천국 갈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계십니다.

계 12장 17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바다 모래, 즉 인류 사회에 군림한 용이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고 그들 위에 섰다고 했으니 영적인 쟁투는 반드시 벌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18장에서는 용을 이기신 하나님은 강하신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싸움의 시작과 결말을 다 보았습니다. 결국, 원수 마귀가 잡혀서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짐으로써 이 영적 싸움은 끝이 나게 됩니다.


올바른 인생 여정과 믿음의 길

인생은 참으로 짧습니다. 10년을 열 번도 못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시 90편 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너무나 짧디짧은 세월 아닙니까? 짧은 이 세월을 올바르게 살다가 가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원수 마귀의 훼방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진리의 길만 가야겠습니다. 진리가 주위의 비방과 훼방을 받는다고 해서 거짓과 타협하고 왜곡된 길을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본보여 주신 그 은혜로운 믿음의 길들을 끝까지 따르고 지켜나갑시다. 영원한 천국 그 영광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천천 만만의 천사들과 더불어 길이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바울과 같은 자가 되고, 베드로와 같은 자가 되고, 또 사도 요한과 같은 그런 훌륭한 믿음을 본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예수님을 사람이라고 얼마나 조롱하고 훼방했으면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을 하여서 성경을 기록하게 될 때에 예수님 앞에 수식어를 사람이신 예수라,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을 전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기록하였겠습니까? 그 시대 사도들의 입장을 살펴보시면서 이 시대의 구원자로 오신 사람이신 성령 하나님을 믿지 않고서는 절대 천국 갈 수 없음을 늘 상기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전파하시고 그 이름을 의지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늘의 자녀들이 모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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